▲ 정세균 전 총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조선일보DB

인물 개인의 스펙만 놓고 보면, 정세균 전 총리를 따라올 여권 잠룡을 찾기 어렵다. 대기업 임원(쌍용그룹 상무), 장관, 당 대표, 6선 중진, 국회의장, 국무총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빼고 다 해봤다"는 자부심 어린 수식어가 붙을 만하다. 현 대권 구도에서 강세를 보이는 와일드한 카리스마의 이재명 경기지사도, 현 정권 초대 총리를 지낸 천하의 달변가 이낙연 전 총리도 그 앞에선 꼼짝 못하는 '후배 정치인'일 뿐이다.

그런 그가 최근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발언의 수위를 높이며 과격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총리 재임 시절에도 코로나 백신 수급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정권을 '철통방어'하는 수문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퇴임 후 대권주자로 분류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행보는 과감해지고, 발언은 강도가 높아졌다. 여권 내 핵심 그룹인 친문(親文) 세력의 향수를 자극하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5.18 같은 진보진영의 성역을 적극적으로 의미 부여하고, 현 집권세력의 눈엣가시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맹폭하고 있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윤 전 총장을 공박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현재 여권의 대표 잠룡으로 분류되는 이재명 지사보다도 '윤석열 비판'의 강도가 거세다. 진보세력에 검찰의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선출된 정권 위에 군림하는 검찰의 무소불위 특권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정 전 총리는 22일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했다.

"검찰개혁의 몸통은 윤석열 전 총장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 아니라, 검찰 조직의 특권을 지키기 위한 검찰총장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지금까지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를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검찰개혁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입니다.

많은 검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공정성이 회복되지 않은 이유는 윤석열 전 총장을 위시로 하는 검찰 내 일부 특권층의 완강한 개혁저항 때문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은 개혁세력에겐 의혹과 수사 과정은 물론이며 기소 사실과 공소장까지 불법으로 유출하면서까지 검찰 권력을 총동원하여 티끌만한 먼지까지 털어내면서도, 검찰 내부와 측근의 불법과 비위와 비리는 묵살하는 고무줄 수사와 기소로 대한민국을 그들만의 검찰 공화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가혹한 검찰의 칼날이 윤석열 전 총장의 가족 범죄에 솜사탕처럼 달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검찰의 불법에는 공정이 통용되지 않습니까?"

'강한 자를 때려야 주목받고, 힘센 자를 꺾어야 살아남는다'는 것은 정치권의 불변의 법칙이다. 우연한 기회에 대권 레이스로 접어든 정 전 총리는 특히나 절박하다. 조용하게 처신하던 그가 여권의 관심을 각별히 받은 이유는 이른바 '제3후보론' 때문이다. 이낙연 전 총리가 전직 보수정권 대통령 사면론 제기로 '자승자박'하는 형국에 몰리고, 비문(非文) 이재명 지사가 친문 세력을 흡수하려는 것처럼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활보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대망(大望)을 꿈꾸는 본인의 정치적 역량이나 특별한 개인기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 아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시대를 잘 타고난 셈이다. 당연히 초조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자기 역량이 밑천을 드러내면, 언제든 거품처럼 꺼질 수 있는 관심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정 전 총리는 그래서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바쁘고 치열하게 정치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본인 출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현 정권의 뿌리인 경남, 즉 '부산파'가 아닌 호남, 그것도 광주-전남도 아닌 애매한 전북 출신이라는 점.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지만 정통 운동권 출신은 아니고 오히려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지낸 친(親) 자본주의적 인물이라는 사실. 총리-의장을 거쳐온 2인자 출신으로서 가지는 '대권 실패 징크스' 등. 여권 후보로서 그의 배경에 낀 먹구름은 짙고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정권을 지지하는 강성 진보층으로부터 "호남과 대기업 출신의 2인자는 꽃놀이패, 대권 경선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 전 총리는 누구보다도 '자력갱생'이 절실하다. 여권 내 제3후보군에 속하는 '원조 친노(親盧)' 이광재, 유시민, 김두관과 맞붙으면 이념 성향과 출신 성분 면에서 판판이 깨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강 후보인 윤석열을 뒤집어 자립하고자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것이다. '합리적 진보' '의회의 신사'부터 '미스터 스마일' '말이 통하는 민주당 중진'에 이르기까지, 각종 찬사 어린 수식어조차 내팽개칠 정도로 '강경 모드'에 열중하는 정세균. 정 전 총리의 승부수는 과연 차기 대선 국면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다음 행보에 정가(政家)의 이목이 집중된다.